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가계도 가장 위에 존재하는 1세대의 신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칭하여 원시 신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혼돈과 대지, 어둠, 밤, 사랑, 그리고 나락을 의미하는 신들이며 이 중 어둠을 의미하는 신이 바로 에레보스입니다.
1. 원시의 신, 그리고 빛과 낮의 아버지
에레보스(Erebo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오스 이후 1세대 신에 해당합니다. 최초의 존재인 카오스에게서 탄생한 첫 번째 신들 중 하나로 어둠의 신이며 밤의 신인 닉스와 남매이며 닉스와 함께 낮을 의미하는 헤메라와 빛 혹은 대기를 의미하는 에테르를 낳은 아버지로도 등장합니다. 물론 그리스 신화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버전의 구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구전에서는 에레보스와 닉스, 에테르와 데이스 모두혼돈과 칼리진의 자손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그 존재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아 명확한 실체가 없는 원시의 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판본에 의하면 에레보스(Erebos)는 가이아와 함께 가장 오래된 신 중 하나이며 동시에 카오스처럼 일종의 개념화된 존재로도 볼 수 있습니다.
2. 빛과의 관계
에레보스(Erebos)가 밤의 여신인 닉스와 결합하여 낮인 헤메라와 밝음이나 대기, 혹은 하늘을 의미하는 에테르를 낳았다는 설정은 "빛이 있으라"라고 명하니 빛이 생겼고, 빛이 생기면서 나뉘어진 어둠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현대에 이르러 관용적인 문구로 자주 사용하게 되는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레보스와 닉스의 관계, 그리고 이들과 그의 자손인 헤메라, 그리고 에테르의 관계 역시 빛과 어둠이 가진 상호대립적인 관계를 투영하여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이 해석은 후대로 내려오며 추가적으로 더해진 설명들에 가깝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근원을 따지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둠이 우선 한 후 빛이 탄생했다는 순서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늘 그렇듯 그리스 신화의 여러 상징이나 비유, 그리고 후대에 만들어지는 이에 대한 해석은 상당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일종의 바넘효과가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3. 에레보스(Erebos)는 하데스의 일부
에레보스(Erebos)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그리스 신화 자체에서도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신들이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등장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원시의 신 들 중 카오스나 에레보스(Erebos)의 경우 인격을 가진 신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추상화된 개념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스토리상 개입되는 부분이 크게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대의 전승에서 에레보스(Erebos)에 대해 나타낸 일부의 전승은 그가 지하세계인 하데스의 일부로 표현되는 경우가 꽤 많습다. 이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로서 등장하여 저승을 두 곳으로 나누어놓는데 그중 망자들이 처음 지나가게 되는 곳을 에레보스(Erebos),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원시신들의 자손인 티탄을 감금하게 되는 더 깊은 지옥을 타 르나로스로 부릅니다.
2023.06.18 - [Mirroring] - 혼돈의 신 카오스(Chaos)는 누구? - 그리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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