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현상이나 장소에는 전설이 얽혀 있곤 합니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신비한 이야기를 더해 의미를 더하는 것일 텐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전설을 가진 수 없이 많은 장소 중, 제주의 김녕굴, 혹은 김녕사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하나 김녕사굴
김녕사굴은 제주의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용암동굴들 중 하나입니다. 이 동굴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로 불리우는 거문오름아래 존재하고 있는 화산중 하나로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이 분화하면서 분출된 용암이 지하를 통해 뚫고 해안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동물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하나의 동굴이 아닌 여러개의 동굴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으로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속한 동굴은 거문오름, 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등입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동굴들이 배열된 위치를 보면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해안으로 하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바로 당시 분출된 용암이 지하로 움직인 흔적임과 동시에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동굴들이 형성된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일부이며, 1962년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김녕사굴은 길이 705m, 폭 10~20m, 높이 10~15m의 동굴로 동굴 내부는 종유석, 석순, 기둥, 용암폭포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존재하는데 이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지질학적인 연구에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곳 중 한 곳입니다. 용암이 흘러간 방향에 따라 형성 도니 이 동굴의 모양이 뱀과 비슷하다고 하여 "사굴"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래서 김녕굴 혹은 김녕사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2. 김녕사굴의 전설
아름답고 신비한 모든 것들이 그렇든 김녕사굴에도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큰 뱀이 사는 김녕사굴의 근처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이 굴에 사는 뱀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훔쳐가는 등 수 없이 많은 해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처녀 한명을 재물로 바치고 굿을 했는데 굿을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뱀이 굴에서 나와 그 해의 농사를 망쳐버렸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조선 중종 즈음 서련이라는 판관이 부임하게 됩니다. 서련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다 예정대로 처녀와 재물들을 준비해 굿을 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이 굴에 숨어들어갑니다.
굿이 시작되자 정말 이 굴에서 거대한 굴이 나와 바쳐진 제물을 모두 먹고 처녀까지 잡아먹으려 하게 됩니다. 서련이 이를 보고 병사들과 함께 이 뱀을 공격하여 드디어 처치하게 되는데 이것을 본 무당이 그에게 제주 읍성안으로 도망하라 말을 하며 절대 중간에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전합니다. 서련은 그 말을 듣고 도망가 이윽고 거의 성에 이르렀는데 뒤를 따르던 병사 하나 가 피로된 비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며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서련이 이를 듣고 의심하여 뒤를 돌아보게 되자 그는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죽은 이유는 그 피로된 비가 죽은 뱀의 피였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녕사굴의 전설은 이 이외에도 여러 전설들이 그렇듯 중간중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전해지는 버전들이 여러 가지인데, 어떤 전설은 판관이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아 마을을 살린 공으로 기념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구렁이가 굴로 도망쳐 죽은 후 굴이 뱀 모양이 되었다고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바로 위의 버전인데 보통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으로 매듭짓는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보기 드문 새드앤딩에 속하는 이야기 끝맺음이라 조금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3. 김녕사굴 전설의 의미
전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전설이 발생한 문화적인 배경이나 혹은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 이 이야기를 역사적인 배경을 전제로 해석하는 방향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기초가 되는 학문은 유학. 이 유학을 학습한 중앙의 관리들이 서울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제주의 토착신앙이나 토호세력과 충돌하는 과정을 뱀과 판관으로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입니다. 실제 제주는 수도인 서울과는 가장 먼 조선의 땅에 속했기 때문에 중앙의 손길이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지역이었고, 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토착신앙들도 뿌리 깊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토착 시앙은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격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배척하고 세력다툼을 벌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이런 과정이 전설로 바뀌어 전승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매우 큽니다. 그나저나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전설을 토대로 해석하자면, 결국 제주에서는 토착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고 중앙의 관리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이 되겠네요.
김녕사굴은 현재 낙석위험으로 입장이 불가한 상태입니다. 입장재개 시기는 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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